좋은글 좋은말

가을은 그저 줍는 달

고재순 2021. 9. 20. 09:21
가을은 그저 줍는 달


박노해



가을은 그저 줍는 달
산길에 떨어진 알밤을 줍고
도토리를 줍고 대추알을 줍고

가을은 햇살을 줍는 달
물든 잎새를 줍고 가을편지를 줍고
가슴에 익어 떨어지는 시를 줍고

그저 다 익혀 내려 주시는
가을 대지에 겸허히 엎드려
아낌없는 나무를 올려다 본다.

그 빈 가지 끝
언제 성난 비바람이 있었냐는 듯
높고 푸른 하늘은 말이 없는데

그래,
괴로웠던 날들도 다 지나가리라고
다시 일어서 길을 걷는 가을
가을은 그저 마음 줍는 달
댓글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