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순 2022. 3. 26. 10:31
홍시 

김시천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물처럼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다구니 쓰고 소리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 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고 
잘난 것만 보지 말고 못난 것들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 저 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걸 그랬어 

잠깐인 것을, 세월은 정말 유수 같은 것을 
나만 모르고 살았을까 

낙락장송은 말고 그저 잡목림 근처에 
찔레나 되어 살아도 좋을 것을 

근처에 도랑물이나 졸졸거리고 산감 나무 한 그루 
철마다 흐드러지면 그 쯤으로 그만인 것을 

무어 얼마나 더 부귀영화 누리자고 그랬나 몰라 
사랑도 익어야 한다는 것을 

덜 익은 사랑은 쓰고 아프다는 것을 
사랑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에는 왜 몰랐나 몰라 

나도 이제쯤에는 홍시가 되면 좋겠어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도록 익을 수 있으면 좋겠어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