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회상 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행복 하지 않은가요?)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 1950. 8. 2. 금강철교...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1.4. 한강 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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