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말 1717

돌계단

돌계단 나태주 네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지. 돌계단 하나에 석등이 보이고 돌계단 둘에 석탑이 보이고 돌계단 셋에 극락전이 보이고 극락전 뒤에 푸른 산이 다가서고 하늘에는 흰구름이 돛을 달고 마악 떠나가려 하고 있었지. 하늘이 보일 때 이미 돌계단은 끝이 나 있었고 내 손에 이끌려 돌계단을 오르던 너는 이미 내 옆에 없었지. 훌쩍 하늘로 날아가 흰구름이 되어버린 너! 우리는 모두 흰구름이에요, 흰구름. 육신을 벗고 나면 이렇게 가볍게 빛나는 당신이나 저나 흰구름일 뿐이예요. 너는 하늘 속에서 나를 보며 어서 오라 손짓하며 웃고 나는 너를 따라갈 수 없어 땅에서 울고 있었지. 발을 구르며 땅에 서서 울고만 있었지.

좋은글 좋은말 2023.11.04

화 도종환 ​ 욕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던지지 못하고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며 오는데 들국화 한 무더기가 발을 붙잡는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되겠냐고​ 고난을 참는 것보다 노여움을 참는 게 더 힘든 거라고 은행잎들이 놀란 얼굴로 내려오며 앞을 막는다 욕망을 다스리는 일보다 화를 다스리는 게 더 힘든 거라고 저녁 종소리까지 어떻게 알고 달려오고 낮달이 근심 어린 낯빛으로 가까이 온다 우리도 네 편이라고 지는 게 아니라고

좋은글 좋은말 2023.10.27

오늘의 고사성어

ㅡ풍운지회 (風雲之會) 다산과 정조대왕의 만남을구름과 바람의 만남이라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ㅡ-실학사상(實學思想)-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강진 유배지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 하면서 자기를 모함한 몇 사람만 불편한 얘기를 조금 했을 뿐 국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원망도 하지 않았고 평생을 나라 걱정 백성 걱정 관료들의 부패 척결에 500여권의 저술을 통해 정치,행정,법학,경제,지리,의학, 공학,등을 아우르며 철저한 실학사상을 펼친 실천 철학인이다 대 저작을 집필하시고 75세에 생을 마치신 선생을 그리며 몇 자 적어봅니다 성호 이익 선생의 유고집을 읽고 실학에 꿈을 키운 다산 정약용 선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유네스코 2012년에 세계기념 인물로 네 사람을 선정하였는데 한국 최초로 다산 정약용..

좋은글 좋은말 2023.10.14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며 /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

좋은글 좋은말 2023.10.14

아버지의 런닝구

아버지의 런닝구 안 도 현 황달 걸린 것처럼 누런 런닝구 대야에 양잿물 넣고 연탄불로 푹푹 삶던 런닝구 빨랫줄에 널려서는 펄럭이는 소리도 나지 않던 런닝구 白旗 들고 항복하는 자세로 걸려 있던 런닝구 어린 막내아들이 입으면 그 끝이 무릎에 닿던 런닝구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게를 많이 져서 등판부터 구멍이 숭숭 나 있던 런닝구 너덜너덜 살이 헤지면 쓸쓸해져서 걸레로 질컥거리던 런닝구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방바닥에 축 늘어져 눕던 런닝구 마흔일곱 살까지 입은 뒤에 다시는 입지 않는 런닝구

좋은글 좋은말 2023.08.19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용혜원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그날은 누구를 꼭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아서 좋을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달라 보이고 날아갈 듯한 마음에 가슴 벅찬 노래를 부르며 살아 있는 표정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골 아낙네의 모습에서 농부의 모습에서 어부의 모습에서 개구쟁이들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알고 싶습니다. 정류장에서 만나 사람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산길에서 웃음으로 길을 묻고 옆자리의 시선도 만나 오며 가며 잃었던 나를 만나야겠습니다. 아침이면 숲길에서 나무들의 이야기를 묻고 구름이 떠가는 이유를 알고 파도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저녁이 오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밤새도록 만들고 싶..

좋은글 좋은말 2023.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