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들이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탱글탱글하면서 상큼한 맛이 일품인 굴과의 즐거운 만남이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바다에서 나는 우유 ‘굴’
서해안 굴, 단단하면서 향긋
남해안 굴, 크고 단맛 감돌아
韓, 中 이어 굴 생산 ‘세계 2위’
추워지면 영양성분 축적 ‘제철’
살 통통하고 탄력있어야 신선
반드시 낮은 온도에서 보관을
무즙이나 3% 소금물에 씻고
식초 물에 담그면 비린내 싹~
아연성분 풍부 숙취해소 효과
뜨끈한 국물·석화구이도 일품
시간의 흔적을 겹겹이 쌓아 바위에 피운 꽃, 석화(石花)는 굴을 뜻하는 한자다. 바깥 껍데기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안쪽 껍데기는 한없이 희고 매끈하다. 오목하게 파인 껍데기 안에는 뽀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담겨 있다. 그 안에 바다를 품고 있다. 시원한 맛과 향기는 바다가 우리에게 내어주는 귀한 선물이다.
우리나라는 굴 생산에 유리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굴은 썰물이 돼도 도망갈 줄 모른다. 채취하기가 쉽다. 신석기 유적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는 많은 굴 껍데기가 발견돼 수천 년 전부터 굴을 먹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굴은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주로 생산된다. 서해안은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이고, 남해안은 수출용 굴을 생산하는 청정해역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자라는 굴은 같은 참굴 품종이지만 환경 조건에 따라 특징이 다르다. 조석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안에서는 바닷물이 빠졌을 때엔 먹이를 섭취할 수 없어 굴이 크지 않다. 색이 진하고 단단하며 향긋하다. 남해안 굴은 바닷물에 계속 잠겨 있어 먹이인 플랑크톤을 먹을 시간이 많아 갯벌의 굴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크고 단맛이 난다. 같은 남해안 굴이라도 지역적 특성에 따라 맛 차이가 난다.
굴은 대부분 양식으로 생산한다. 세계 굴 생산량 가운데 양식 굴이 98%에 이른다. 세계 1위 생산국은 중국으로 전체의 86%나 된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생산하는 양이 전체의 94%나 될 정도로 아시아에서 나오는 비중이 높다. 아시아 3국에 뒤이어 미국과 프랑스가 굴을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굴 생산국이며 세계 생산량의 5% 가까이를 수확한다. 우리나라도 양식 비중이 95%를 넘어섰다. 전체 양식 굴 생산량의 80%가량은 경상남도에서 나온다. 통영뿐만 아니라 고성, 거제, 여수 등이 주 생산지다. 전남 여수 굴과 고흥 굴은 우수한 지리적 특성을 가진 수산물로 등록돼 있다.

오래전부터 해안마을에서는 바다 환경을 잘 활용해 굴 양식을 했다. 갯벌에 돌을 던져 넣거나 나무를 꽂아 굴이 더 많이 붙도록 했다. 이후 선구적인 어업인들의 노력으로 남해안에서 수하식 양식법이 성공하면서 경남의 굴 생산량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굴의 주 생산지가 전남에서 경남으로 옮겨진 계기가 됐고 수출상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남해안 수하식 굴 양식은 바다를 그대로 이용한다. 굴이나 가리비 껍데기를 길게 엮어 물에 담가 둔다. 수정란에서 나온 유생은 부유생활을 거친 후 엮어 둔 껍데기에 달라붙는다. 폐사를 막기 위한 단련 시기를 거쳐 바다 양식장으로 옮겨지고 부표 아래로 내려 키워진다. 같은 남해안이라도 지역에 따라 채묘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유럽 방식인 수평망식 굴 양식법으로 개체굴 양식도 하고 있다. 개체굴 양식이란 낱개로 홀로 떨어져 있는 2∼3㎝ 크기의 굴을 그물망에 담아 상품성 있게 키우는 방식이다. 알을 품지 않는 3배체 굴을 키워내면 산란기에도 판매할 수 있는 고품질 굴이 생산된다. 3배체 굴이란 씨 없는 수박과 마찬가지로 염색체 수가 일반 굴의 1.5배인 것을 말한다. 생식소 발달에 쓰일 에너지를 성장에 사용해서 빠르게 자란다.
추운 겨울 바다 갯벌에서 굴을 딸 때는 조새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굴을 떼어내 반대편 갈고리로 하나씩 꺼내 모은다. 바다에서 수확한 수하식 굴은 여러 개의 굴이 덩어리로 붙어 있는데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껍데기를 벗겨내 알맹이 굴로 출하한다. 출하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빠르면 10월부터 수확을 해 늦게는 이듬해 5월까지도 출하한다.
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출하량이 가장 많은 시기도 김장철과 겹치는 11월과 12월이다. 추운 겨울을 준비하면서 굴은 글리코겐 같은 영양성분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굴이 맛있어지는 이유다.
산란을 준비하는 봄에는 유독 플랑크톤을 축적해 마비성 독소를 품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바닷물의 수온이 높아지는 6월부터는 독성이 없어진다. 이 독소는 가열해도 쉽게 파괴되지 않으므로 채취금지 해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채취하지 않아야 한다.
산란을 마친 굴은 영양분을 소모해 육질이 물러지고 약한 상태가 된다. 여름철이 되면 기온이 높아져 세균번식이 쉽다. 식중독 세균도 자랄 수 있으므로 가열해 섭취할 필요가 있다. 추위에 강한 바이러스인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은 겨울철에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굴에서 만들어지거나 번식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분변이 오염됐을 때 문제가 된다.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을 예방하려면 가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심온도가 85∼90도로 되게 해 1분 이상 가열하면 된다.
굴을 고를 때는 신선도가 중요하다. 속살이 통통하고 탄력이 있는 것이 좋다. 신선한 굴을 고르려면 껍데기가 있는 것을 택하되 열려 있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한다. 굴은 꼭 낮은 온도에서 보관한다. 오래 보관하지 않고 되도록 빨리 섭취하는 것이 좋다. 빨리 섭취할 수 없다면 냉동할 것을 권한다. 나중에 꺼내어 국, 라면, 떡국에 넣어 먹으면 된다.
굴을 씻을 때는 보통 3% 소금물로 한다. 무즙이나 감자전분을 넣어 씻기도 한다. 무를 강판에 갈아 굴과 섞어 5∼10분간 두었다가 찬물로 씻어내면 이물질 제거에 효과적이다. 무에 있는 여러 효소가 이물질 분리를 쉽게 하고 잘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 소금물에 씻은 다음 식초 물에 살짝 담갔다 꺼내면 굴의 비린내를 줄일 수 있다.
서양에서는 비린 맛을 중화하는 레몬즙이나 미뇨네트 소스와 함께 굴을 먹는다. 그대로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초고추장을 찍어 먹거나 간장과 참기름만 약간 넣고 후루룩 먹어도 좋다.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 불리는 굴은 영양이 풍부하다. 굴에 많이 들어 있는 아연은 체내에 있는 수많은 효소의 활성을 높여 우리 몸에 이로운 효과를 나타낸다. 굴은 숙취해소와 피로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김장양념과 함께 노란 배추속에 싸먹는 굴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비타민 B1이 많이 들어 있는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김장 피로를 풀어주는 환상의 조합이다.
굴은 매력적인 식재료다. 무국이나 콩나물국, 굴짬뽕 등 어디에 넣어도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추운 겨울 숯불에 껍데기째 올려 구워 먹는 석화구이도 굴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매생이와 굴을 넣어 끓인 매생이굴국, 따뜻한 국물로 속을 달래주는 굴국밥은 겨울철의 별미다. 달걀 물로 노란 옷을 입혀준 굴전은 초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맛있다.
어리굴젓은 밥도둑이다. 소금을 넣어 따뜻한 곳에 두었다가 고운 고춧가루와 버무려 숙성한 발효 음식으로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먹는다. 매콤하면서 톡 쏘는 뒷맛이 일품이다. 영양 가득한 굴밥도 좋다. 굴을 넣은 보쌈김치는 굴의 시원한 맛이 배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신구대 식품영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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