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말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

고재순 2020. 5. 14. 10:20

게시글 본문내용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


김왕노



나의 생이란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고 하자, 꽃도 별도 아니고
밤도 새벽도 아니고 전갈도 거미도 인어도 아니고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고 하자. 너를 마주치지 못해서 네가 허무한 포말, 신기루 같아도
네 이름을 부르며 자위하는 밤이어도 다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일
나의 생이란 여름 소낙비도 아니고 소쩍새 울음도 물총새 울음도 아닌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 하자. 만나러 가다가 마주치는
고목뿌리까지 뽑는 태풍, 지상의 모든 간판을 휘날릴 것 같은 태풍도
총성이 다슬기처럼 귀에 다닥다닥 붙던 5월도 만나지만 정말
만난다는 것은 나를 한 보따리 짐으로 싸 너 만나러 왔다 가는 것
전생의 기억마저 말처럼 몰아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 하자
허탕 쳐 뒤돌아서 가는 것조차 다 너 만나러 왔다 가는 길
목숨 수없이 갈아 신으며 온 이번 생은 너 만나러 왔다가는 생이라 하자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 천년의시작, (2016)

 


'좋은글 좋은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햇볕에 누워   (0) 2020.05.15
♡친절의 효과♡  (0) 2020.05.15
이해의 손길   (0) 2020.05.14
  (0) 2020.05.14
오월 편지  (0) 202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