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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 사시네요

고재순 2020. 5. 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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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 사시네요

오정하


그다지 친하다 생각했던 적 없던
중학교 동창이 연락도 없이 급방문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지금으로 말하면 돌싱이라 들렸던 차인데

방문턱을 들어서며
아랫목에 앉아계신 울 아부지에게
넙죽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래도 사시네요..."

친구의 황당한 인사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체
엉거주춤거리는 건 우리 가족들 뿐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속담 속 주인공처럼 해맑게 웃는다

공부벌레였는데 성적은 그다지
우수하지 못했던 친구
반 전체가 벌 받는 중에도 몰래 공부하던 친구
스스로 왕따가 되었던 친구

어쩌다가
학벌이 조금 떨어지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고
아들을 낳고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정신줄을 붙들지 못해 아들은 빼앗긴 채
친정으로 내쳐짐을 당했다는 후문에

가슴이 짠하게 아팠던
아주 오래 전 기억이 비를 타고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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