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말

생존 게임-사이클

고재순 2020. 6. 6. 16:01

 

생존 게임
-사이클


류휘석



들어가지 마시오

​이렇게 열심히 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신발 끈을 묶는 너보다 안내문이 선명해서

우리는 공원 시계탑 앞에서 깍지 낀 손을 뻗으며 약속했다 건
강해지거나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돌아오자고

달려드는 트랙과
동시에 나는 회전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보다 건강이 건강보다 강박이 앞질러 뛰어가고 있었다

안쪽은 빠르게 뛰는 곳입니다 충돌할 위험이 있으므로 급하게
멈추지 마시고 천천히 바깥으로
밀려나라고
안내문에서 본 것 같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면서
나는 잠시 희미해졌다가 옆 사람과 자리가 바뀐다

트랙의 안쪽에는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멈춘 잔디로 개가 뛰어 들었다
나는 잃어버린 너의 뒤통수를 찾느라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개를 쫓는 목줄과 깍지 낀 손이 잔디로 사라지고
그 사이로 조명이 몰려들었다

어두워진 하늘이 구름을 흩트려 사라진 조명은 더욱 명료해졌다
누군가 넘어질 것 같았지만

달려 나간 몸을 주우러 모두가 부지런히 뛰었다 시계탑을 지나
다시 시계탑으로 돌아오면서 눈앞에서 점점 스러지는 몸을 쫓았다

아무도 잃어버리는 것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니까

나는 시계탑 앞에 멈춰 숨을 고르며
이제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안내문을 바로 세우고 있는 네가 보였다
손을 힘껏 쥐자 사라졌던 목줄이 돌아왔다

-<시인동네>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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