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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환자에게, 통증은 축복입니다"

고재순 2021. 11. 2. 09:49
"당뇨 환자에게, 통증은 축복입니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조영민 교수에게
당뇨병성 신경병증에 대해 물었습니다. 조영민 교수는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은 감각수용체를 발견한 두 연구자에게
돌아갔다”며 “그만큼 신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답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자세한 내용 바로 들려드립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어떤 병인가요?


“아주 복잡하고 골치 아픈 당뇨 합병증입니다.

높은 혈당 탓에 미세 혈관이 손상을 입으면서 그 혈관이
지나는 말초신경에도 문제가 생기는 병입니다. 말초신경은 또다시
감각·운동·자율신경으로 나뉘어, 그 기능이 떨어지면 아주 다양한 증상을 유발합니다.


손발이 저리거나 시리고, 발의 감각이 무뎌지고,
발 모양이 변형되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며, 성생활에 지장을 받는 식입니다.
증상이 워낙 다양하고,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달라서 복잡하고
골치 아픈 당뇨 합병증이라고 하는 겁니다.

당뇨병 환자의 20% 정도가 당뇨병성 신경병증을 앓는데,

다행히 환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당뇨병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혈당 관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된 덕분으로 보입니다. 다만 여성이 남성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을 더 많이 겪는데, 이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민감해서
증상을 더 잘 알아차리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치료는 어떤가요?


“신경은 한 번 죽으면 되살릴 수 없습니다.

근시가 있으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생기면 증상을 완화하도록 대증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신경통
약제나 항우울제 등을 쓸 수 있지만 약 종류가 많지 않고, 통증이 수반됐을 때
약을 쓴다 하더라도 효과를 보는 경우가 절반에 불과합니다.


다만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되기 때문에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치료하길 권합니다.
방치하면 신경이 완전히 망가져 발 감각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당뇨발 위험이 크게 올라갑니다.”

당뇨발로 이어진다니, 간과해선 안 되겠네요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치료 옵션이 다양하지 않고,

치료 효과도 개인차가 커서 예방이 최선인 질병입니다.
2012년에 남태평양 피지에 가서 보건의료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의료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의 인구는 80만 명인데 그 중 절반이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자신이 당뇨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맨발로 다니는 등 관리를
제대로 못 해 한 해에 400명이 발을 절단하는 지경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까지 심각하진 않지만, 우리나라도 당뇨병성 신경병증 환자의
50%가 본인의 손발 감각이 떨어진 것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정기적인 검진이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것만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


“당뇨병 인지율, 치료율, 조절률을 모두 높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당뇨를 빨리 발견하고 혈당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정상 수준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이미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생겼더라도 이를 빨리 발견하는 게 중요합니다.


치료를 통해 삶의 질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손이 저리고 찌릿한 느낌이 들거나, 모래를 밟는 것 같거나, 손발에
무언가를 씌워놓은 것 같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면 주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아뎀 파타푸티언,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가

발견한 게 바로 감각(온도·촉각)수용체입니다. 이게 신경병증의 핵심입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업적을 ‘우리의 생존에 결정적이고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감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몇 해 전
외국 학회에서 한 교수가 ‘Pain is a blessing(통증은 축복)’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손과 발끝을 통해 촉감이나 온도를 느끼는 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입니다.
혈당 관리를 부디 잘 해서 신경이 망가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을 통해 감각에 대한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닫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