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김용택 봄비 오는 날 뭐 한다요 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 오고 비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비를 보다 비 따라가던 마음이 문득 돌아오면 다시 책을 봅니다 그러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움직여 도로 그리 간답니다 시방 뭐 하시는지요 나는 오늘 혼자 놉니다 비를 보며, 때로 바람 따라 심란하게 흩날리는 비를 보며 혼자 놉니다 선암사 홍매가 피어나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어버렸는지 자꾸 선암사 홍매가 궁금합니다 이끼 낀 가지 끝에 붉은 이슬처럼 맺힌 홍매를 생각하며 빗방울을 따라가다 보면 빗방울들이 땅에 툭툭 떨어져 부서지며 튀어 오릅니다 산이 적막하고 나도 적막하고 물이 고요하고 나도 고요합니다 고요한 마음에 피는 선암사 홍맷빛이 내 마음에 물결처럼 일어납니다 일었답니다 내 마음이 자꾸 그리 갑니다 가는 마음 붙잡아 되돌려 앉혀놓아도 마음은 자꾸 그리 달아납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선암사 홍매는 한 잎 두 잎 꺼져도 내 마음에 일어난 그리운 꽃빛은 언제나 꺼질지 나는 모른답니다 나도 모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