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말

홑이불

고재순 2022. 9. 17. 15:12
홑이불


김용택


새벽바람이
맨발을 스치고 지납니다.
낮달을 끌어다 발을 덮습니다.
바람이 어디를 지나왔는지,
눈을 감아도 따라 들어오지
않은 메마른 얼굴이 있습니다.
그대를 생각하는 일이
문득문득 하루 종일입니다.

산그늘 밖으로 손을 내놓은
나무들,
닭들이 뒤뚱거리며 산그늘을
따라 배추밭까지 나갔습니다.
허리가 굽은 늙은 농부 부부가
텃논에서 마른 짚을 묶어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 기댄
먹감나무
먹감들이 하얀 서리꽃을 덮고
알맞게 먹물이 드는 동안
마당에서는 이미 마른 감잎들이
끌려다닙니다.

강을 건넌 햇살은 무덤 잔디
위에서 침묵으로 하루가
편안하였습니다.
거짓 없이 시드는 아름다운
저녁 햇살,
난생처음 그립다며 내게 울던
당신
나는 아직도 그대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낮달을 끌어다가
꿈틀대는
맨발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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