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밥상

사람도 시들게 하는 "춘곤증" 봄나물로 이겨보자.

고재순 2017. 4. 17. 10:41



[新동의보감] 木氣를 살리려면

‘봄봄봄 봄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향기 그대로…’ (로이킴의 봄봄봄)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의 봄 처녀)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범오 작사, 김준영 작곡의 처녀·총각)

봄(春). 오행으로는 목(木)에 해당하고, 방위는 동쪽이다. 남녀의 사랑을 상징하고, 정욕(情慾)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봄 노래 대부분이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남녀 간의 에로틱한 성행위 모습을 그린 그림을 춘화(春畵)라고 부르는 것은 문화예술의 세계에서 봄이 사랑과 성(性)을 상징하는 계절임을 말해준다.

목(木)이라는 글자는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나무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겨우내 응축되었던 에너지가 봄이 되면 땅을 뚫고 위로 올라오기에 오행에서 봄을 목(木)에 배속한 것이다.

봄이 오면 많은 사람이 춘곤증(春困症) 증상을 호소한다. 자주 피곤해지고, 오후만 되면 졸리고, 일할 의욕도 없어지고, 능률이 떨어지면서 짜증만 늘어난다. 춘곤증이 찾아오면 애정표현의 질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木氣 함축한 봄나물 춘곤증에 특효

춘곤증의 비밀은 곤(困)이라는 글자 속에 숨어있다. 곤(困)은 나무(木)가 상자(口)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글자다. 나무는 끊임없이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나무가 상자 속에 갇히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 몸속에 있는 목기(木氣)도 제대로 상승하지 못하면 곤(困)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봄에 목기가 갇혀 피곤(疲困)해진 상태가 바로 춘곤증이다.


냉이·씀바귀·달래·두릅·엄나무·취나물·쑥·민들레·질경이·원추리·둥굴레·돌나물·고사리·더덕·잔대…. 이름만 들어도 싱그러운 봄의 전령들이다. 지천에 널린 봄나물이 영양학적으로 몸에 좋고, 춘곤증에 특효라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생활 속의 지혜로는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왜 좋은가하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진다.

한의학적으로 바라보면 봄나물과 춘곤증의 관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먼저 채취 시기와 생태의 특징에 주목해보자. 봄나물은 동토(凍土)의 찬 기운을 금방 뚫고 나온 새싹이다. 겨울이 지나 새봄이 되면서 솟아오르는 힘을 목기라고 하는데, 목기는 오행 중에서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목(木)의 기운을 뜻한다.

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 수도꼭지에서 물이 분출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목기는 생명력, 에너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봄나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가득한 목기로 강력하게 솟아오르는 힘의 결정체’가 된다. 이제 강력한 목기를 함축하고 있는 봄나물이 봄의 피로, 춘곤증을 없애는 최고의 약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소화기능이 약하고 손발이 차면서 몸이 냉한 타입의 사람은 목기가 상승하는 힘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봄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상자 속에 갇혀 버려 춘곤이 된다. 이때에는 성질이 따뜻한 봄나물이 좋다.

따뜻한 성질의 봄나물을 섭취하면 몸의 에너지는 고동치게 되고, 목기는 힘을 받아 잘 상승할 수 있다.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대표적인 봄나물이 바로 쑥이다. 쑥의 어린 순을 따서 끓인 국은 복부의 냉증과 통증을 없애준다. 아울러 온몸의 기혈 순환을 원활하게 해 손발에도 온기가 돌게 한다.

매운 맛을 가진 달래도 몸을 데워주는 봄나물이다. 뿌리(비늘줄기)는 마늘을 닮았고, 줄기는 파와 비슷하다. 한약명이 소산(小蒜)인 달래 뿌리는 위와 장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를 촉진시킨다.

평소 다혈질이고 열이 많은 사람이 피로를 호소하면서 춘곤증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성질이 차갑고 서늘한 민들레나 질경이의 새순이 좋다.

외향적인 성격이면서 소화기능이 좋은 사람이 춘곤에 처했을 때는 맑은 목기가 상자 속에서 좌충우돌하다가 열로 바뀌어 버리기 쉽다. 이런 경우를 한의학에서는 곤열(困熱)이라고 한다.

봄나물의 대표주자 냉이

민들레나 질경이는 약용이든 식용이든 뿌리는 쓰지 않는다. 봄나물로 식용할 때는 초봄의 새순이 적당하다.

두릅

민들레는 맛이 쓰고 성질이 차가워 열을 내리고 해독하는 작용이 있어 각종 염증으로 인한 종창, 눈의 충혈 등에 효과적이다.

민들레 새순의 차가운 성질로 곤열이 사라지게 되면 입맛이 돌아오고 피로감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질경이의 새순도 마찬가지로 성질이 차가워 열을 내린다. 이뇨 작용도 있어 소변을 맑게 하고 잘 나오게 한다. 몸이 특별하게 차갑거나 뜨겁지 않은 사람들은 건강한 몸이므로 여러 가지 봄나물을 골고루 섭취하면 봄의 환절기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다.

냉이는 봄나물의 대표주자다. 한약명은 제채(薺菜)인데, 그 성미가 달고 화평해서 부작용 없이 누구나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냉이는 새순에서 뿌리까지 전초를 모두 식용한다. 아미노산, 당류, 비타민 B1과 C 등이 풍부한 영양덩어리이다. 춘곤증으로 피로가 밀려올 때 먼저 떠올려야 할 봄나물이다.

『동의보감』에서는 간 기능을 도와 해독작용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냉이는 채소 가운데 단백질 함량이 아주 높고 칼슘과 인, 철분이 풍부하며 우수한 알칼리성 식품이다. 몸이 허약해서 생리불순·코피·산후출혈 증상이 있는 사람, 무기력한 노인이 먹으면 좋다.

두릅은 두릅나무의 새순이다. 두릅은 갓 올라온 새순이 최고이므로 잎이 펼쳐지기 전에 따야 한다. 새순이 입을 다물고 있고 뭉툭하고 굵은 것이 최상품이다.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활력이 없는 사람이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엄나무도 두릅나무과에 속한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는 나무 둥치와 달리 연초록 새잎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두릅은 위의 기능을 왕성하게 하고 위경련이나 위궤양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꾸준히 섭취하면 위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신경을 안정시키는 칼슘 성분이 들어 있어 불안·초조감을 없애 준다. 긴장이 지속되는 사무직 직장인과 학생이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잠도 잘 온다.

취나물은 어린잎을 나물이나 쌈으로 해서 먹는 친숙한 산나물이다. 쓴맛은 없고 다소 매운맛이 있어 가볍게 데쳐 찬물에 담갔다가 사용한다. 취나물은 비타민 함량이 많아 식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성질이 따뜻해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관절·근육이 아플 때와 요통·두통에 효과가 있다. 취나물은 칼슘 함량도 높아 뼈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나물은 수산이 많아 몸속 칼슘과 결합해 결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생으로 먹기보다는 데쳐서 먹을 것을 권한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린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슘과 생체 유지에 필수적인 무기질 성분도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사리는 어린잎을 뜯어 끓는 물에 삶아 나물로 무쳐 먹는다. 『동의보감』에는 “고사리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다. 삶아서 먹으면 맛이 아주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방에서는 고사리의 뿌리를 궐근(蕨根)이라 하며, 두통·가래·종기·습진·관절통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한다.

죽순은 성질이 차고 달다. 열이 많은 사람이 가래와 현기증이 심할 때 먹으면 효과가 있다. 칼륨이 많아 체내 염분을 조절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효능도 있다. 하지만 평소 설사를 자주 하거나 몸이 찬 사람은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원래 봄나물은 따로 정해진 것은 없고, 이른 봄에 돋아난 식물의 새싹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봄나물이라 할 수 있다. 체질에 맞는 봄나물을 골라 먹는 지혜만 갖는다면 춘곤증을 이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것이다.

정현석 약산약초교육원 고문
튼튼마디한의원 대표원장. 경희대 한의과 박사. 경남 거창 약산약초교육원에서 한의사들과 함께 직접 약초를 재배하며 연구하고 있다. '신동의보감 육아법' '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