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해외에서 가장 '엽기적인' 음식으로 통하는 건 낙지다. 산낙지는 한국을 찾는 외국 요리사와 미식가들이 '도전'하는 가장 난이도 높은 음식으로 꼽힌다. 유럽에선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지중해를 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문어를 '바다의 악마'라고 여겨 먹지 않았던 데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전통이 없다. 그러니 살아 꿈틀대는 낙지를 먹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리라. ① 살아 꿈틀대는 낙지. 한국인에겐 입맛 다시게 하는 가을 별미, 외국 미식가들에겐 가장 도전하기 힘든 한국의 맛이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쓰러진 소도 일으키는 '갯벌의 인삼' 낙지는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살짝 서늘해지는 요즘부터 제대로 맛이 들기 시작해 가을에 절정을 맞았다. 5~6월이 산란기로, 이맘때 알에서 깨어난 낙지들이 먹을 만한 크기로 몸집이 붇는 철이 가을이다. 주낙, 통발, 도수업(맨손어업) 등 여러 방식으로 잡는다. 이 중 맨손으로 갯벌에서 잡는 낙지를 최고로 친다. 갯벌 깊숙이 한쪽 어깨를 다 넣을 정도로 손을 뻗어 낙지를 잡아 빼내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낙지가 왜 이리 비싸냐'는 불평은 다시 하지 못한다. 맛도 맛이지만 스태미나 식품으로 이름났다. 한여름 농사일하다가 지쳐 쓰러진 소에게 낙지를 먹였더니 벌떡 일어났다고 기록한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玆山魚譜)가 낙지 명성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호남에선 낙지가 '갯벌 속 인삼'으로 통한다. 낙지를 인삼에 비교하는 건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낙지에는 인삼 한 근과 견줄 만한 양의 타우린이 들었다. 타우린은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 정력을 증가시키고, 간의 작용을 돕는다. 꽃처럼 예쁘고 맛 좋은 세발낙지 ② 젓가락에 돌돌 말아 구운 낙지 호롱구이. ③ 매콤새콤달콤하게 무친 낙지초회. ④ 서울 역삼동 ‘해남천일관’ 낙지 연포탕.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크기에 따라서 '대(大)낙' '중(中)낙' '소(小)낙'으로 분류된다. 대낙은 1㎏에 2~3마리, 중낙은 5~6마리, 소낙은 7~8마리쯤 된다. 날로 먹는 낙지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세발낙지는 소낙보다도 작고 가늘다. 몸길이 20㎝, 머리 지름은 2~3㎝ 정도다. 이제는 상식이 됐지만, 발이 세 개라는 뜻이 아니라 발이 가늘고 짧아서 가늘 세(細)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발낙지라는 이름은 1970년대 중반부터 불렸다고 알려졌다. 목포에서는 작고 예쁘다고 하여 '꽃낙지'라 불리기도 한다. 낙지가 워낙 비싸고 귀해지면서 중국산 수입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한 낙지집 주인은 "서울에서 파는 낙지의 98%는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며 "솔직히 국산과 외국산 낙지를 맛으로 구별할 수 있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낙지집 주인들에게 국내산과 외국산의 차이를 물어보니 대체로 "때깔이 다르다"고 답했다. 국산 낙지는 펄과 비슷한 회색인 반면, 중국산은 희멀건 느낌이다. 가장 큰 차이는 생명력이다. 국산은 쉴 새 없이 꿈틀대지만, 중국산은 장거리 여행의 '노독'이 쌓였는지 몸놀림이 둔하고 느리다. 국산 낙지는 잘게 잘라 참기름에 버무려도 접시에 철썩 달라붙어 떼어내기 힘들다. '가을 낙지 먹으려면 쇠젓가락이 휜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다. 완강히 저항하던 국산 펄낙지는 입에 들어가면 확 달라진다. 부드럽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배 나온다. 중국산은 질기고 심심하다. 씹으면 약간 비린내가 난다. 하지만 이렇게 둘을 놓고 비교하면서 먹으니 그렇지, 그냥 먹으면 누가 이 차이를 알까 싶다. 산낙지 못 먹겠다? 기절낙지·탕탕이가 있다 낙지 고유의 담백한 감칠맛을 만끽하려면 양념이 없거나 적을수록 좋다. 국내 낙지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하는 전남 해안 지역 사람들은 살아있는 낙지를 깨끗이 씻기만 한 다음, 흔히 '머리'로 아는 낙지의 둥그런 몸통을 젓가락에 꽂아 둘둘 만 다음 초고추장이나 된장만 찍어 먹는다. 고수(高手)들은 젓가락 따위 도구는 쓰지도 않는다. 한 손으로 낙지 몸통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 다리를 훑어가면서 입안으로 빨아들이듯 먹는다. 기절낙지./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살아보겠다며 꿈틀대는 낙지가 가엽거나 징그럽다면? '기절낙지'와 '낙지탕탕이'가 있다. 국내 낙지 주요 산지 중 하나인 무안에서 본 기절낙지 요리법(이랄 것도 없이 준비법에 더 가깝지만)은 이러하다. 먼저 낙지의 미끌미끌한 점액질을 물로 '빨아낸다'. 산낙지는 바닷물로 씻지만, 기절낙지는 민물을 써야 한다. 몸통에서 다리를 떼어낸 뒤 접시에 가지런히 담는다. 몸통은 끓은 물에 데치고 오븐에 구워 살아있는 다리와 함께 접시에 올려 손님상에 낸다.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낙지 다리가 허공에서 꿈틀댄다. 하지만 산낙지처럼 맹렬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정말 '기절한 낙지' 같다. 배와 양파를 곱게 갈아 광천수, 고춧가루 등과 섞은 양념에 찍어 먹는다. 새콤달콤매콤하면서도 살짝 쏘는 양념이 보들보들한 낙지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여덟 다리와 빨판으로 거세게 저항하는 산낙지보다 한결 먹기 수월하다. 낙지탕탕이는 기절낙지보다 '난도'가 더 낮다. 그만큼 먹기 쉽단 말이다. 생낙지에 생강과 마늘을 섞어 도마에서 잘게 다진다. 기름 없는 한우 살코기와 함께 다지기도 한다. 이걸 간장과 참깨, 참기름에 버무려 접시에 담고 다진 풋고추를 올려 낸다. 회가 아닌 익혀 먹는 요리로는 '낙지연포탕'과 '낙지 호롱구이'가 있다. 제대로 맛이 든 가을 낙지라면 연포탕이 최고다. 무, 조개, 다시마, 멸치, 가쓰오부시 등 집집마다 재료는 다르지만 맑고 시원하게 뽑은 국물에 낙지를 질기지 않게 살짝만 데쳐 먹는다. 소 갈빗살을 넣고 함께 끓이는 '갈낙탕'을 보양식으로 선호하는 이도 많다. 낙지 호롱구이는 전라도에서는 제사상에도 오르는 귀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래서 무안이나 목포 등 전남 바닷가 지역을 벗어나면 맛보기 힘들다. 호롱은 볏짚의 전남 사투리. 낙지를 볏짚에 돌돌 대각선으로 말아서 삶아낸 다음, 여기에 간장과 참깨, 고춧가루, 다진 파, 생강 등을 섞은 양념을 발라가며 구운 요리다. 고추장이나 물엿을 더하기도 한다. 볏짚은 구하기 힘든 데다 농약이 꺼림칙하다고 해 볏짚 대신 나무젓가락을 더 쓰는 추세다. [관련 기사] 전남에서 '낙지의 정석' 연포탕을, 서울에선 '낙지의 변주' 낙지물회를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