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간, 술 안 마셔도 안심하지 말자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간은 ‘인체의 화학공장’이라고 불린다. 각종 물질의 대사와 해독, 면역 작용, 호르몬 조절 등 간이 우리 몸에서 하는 일은 500가지가 넘는다. 가뜩이나 바쁜 간에게 연말은 혹독한 시기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알코올의 습격과 극성을 부리는 각종 바이러스, 약물 등의 공격에 시달리며 묵묵히 일한다. 재생력이 뛰어난 간은 어지간히 손상을 입기 전까진 별다른 티를 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침묵의 장기’인 간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치료 시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간질환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암 사망자 중 간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1.5명으로 모든 암을 통틀어 2위에 올랐다. 특히 40, 50대에서는 전체 암 사망률 중 가장 높다.
◆간 수치가 절대적은 아냐
성인 한 사람의 간에는 보통 3천억 개가량의 간세포가 있다. 간이 손상되면 간세포 속에 있던 효소가 빠져나와 혈액과 함께 돌아다니게 된다. 혈액검사는 이러한 효소의 혈중 수치를 파악해 간 기능 저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간 기능을 나타내는 수치는 AST, ALT, 감마(γ)-GT, ALP, 빌리루빈(bilirubin), 알부민(albumin), 프로틴(protein), PT(prothrombin time) 등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효소는 AST와 ALT다. AST와 ALT의 수치가 높다는 건 간세포의 세포막이 파괴돼 효소들이 혈액으로 흘러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AST와 ALT는 0~40 IU/ℓ이 정상 범위다.
감마-GT는 간 내의 쓸개관에 존재하는 효소로 쓸개즙 배설에 장애가 있을 때 증가한다. 감마-GT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11~63 IU/ℓ, 여성은 8~35 IU/ℓ가 정상이다. 감마-GT는 음주와 흡연을 즐기거나 특정 약물, 건강식품 등을 섭취하는 사람에게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간 수치가 정상이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간경변이나 간암 환자 일부는 AST와 ALT 수치가 정상이거나 정상과 가깝게 나타나기도 한다.
간 건강이 나빠졌을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피로감이다. 과로를 하지 않아도 늘 피곤하고, 충분히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게 특징. 그러나 만성 피로가 모두 간 때문만은 아니다. 스트레스나 불안, 수면 장애 등이 있거나 빈혈, 갑상선기능저하증, 우울증, 결핵, 만성피로증후군 등이 있어도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술 안 마셔도 간질환 걸릴 수 있어
간 손상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간염 바이러스와 알코올, 비알코올성 지방간, 약물 또는 독성 간염 등이다. 바이러스성 간염 중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건 B형과 C형이다. B형 간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만성 간질환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B형 간염 환자 수는 36만 명이나 됐다. B형 간염에 감염된 성인 환자 중 90~95%는 회복되지만, 5~10%는 보균자나 간경변`만성간염으로 진행하고, 간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음주도 알코올성 지방간과 간 손상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과도하게 알코올을 섭취하면서 간세포에 지방이 축적되는 게 원인이다. 또한 간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술을 마시면 손상된 간세포가 회복하지 못하고 알코올성 간염으로 진행된다. 심한 알코올성 간염은 간이 커지면서 복수가 차거나 간기능 부전 상태에 이르러 생명을 위협한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끼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올 수 있다. 주로 비만, 제2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이 원인이다. 최근 비만 인구가 늘면서 비알코올성 지방간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방치하면 지방간염이나 간경변으로 진행하거나 간암이 발생할 수 있다.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변증으로 간이 탄력을 잃으면 간에서 피를 보관하지 못하고 위나 식도의 혈관에 피가 고이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혈관이 터지면 입으로 피를 토하는 정맥류 출혈이 생긴다. 일단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면 정상으로 회복되기 어렵다.
◆간 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간경변은 완치가 어려운 질환이다. 한번 딱딱해진 간은 다시 건강한 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간은 30% 정도의 기능만 살아 있어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 간경변이라도 합병증이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하면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방 접종은 간질환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건강한 사람은 A형, B형간염 예방 접종을 하고, 이미 만성간염이 진행 중이라면 폐렴과 독감, 파상풍 접종 등을 받는 것이 좋다. B`C형 간염에 걸렸다면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한다.
지방간을 예방하려면 금주와 체중 조절이 필수다. 간 기능을 악화시키는 흡연은 중단하고, 술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적절한 영양 섭취와 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간경변 환자는 간 기능이 떨어져 영양 불균형을 겪기 쉬우므로 균형 잡힌 식사가 필요하다.
간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도 남용하다간 간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숙취 해소 음료나 건강기능식품은 대부분 헛개나무 열매나 밀크시슬 등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손상된 간의 회복과 간세포 재생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성분들이다. 우르소데옥시콜산(UDCA) 성분을 포함한 간장보조제도 의사의 처방 없이 쉽게 구할 수 있어 장기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성분이라도 지나친 고용량을 복용하면 해독`대사를 해야 하는 간에 큰 부담을 준다.
송정은 대구가톨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만성 간질환을 예방하려면 주기적인 검진으로 건강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면서 “성분을 알 수 없는 민간요법은 간에 더욱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검증되지 않은 음식이나 약물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송정은 대구가톨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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