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유증 심각한 안면 대상포진 안면 대상포진을 진단받은 박씨는 “주변에서 가슴 등 허리 쪽에 대상포진이 생겼다는 노인들은 종종 봤는데, 얼굴에도 걸리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피곤하면 생긴다고 들었다”는 박씨는 “아이 보느라 좀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박씨는 항바이러스제와 통증 치료를 받고 있다. 이달 초 눈이 심하게 붓고 아파 응급실을 찾은 유모(83)씨는 얼굴에 생긴 대상포진이 눈으로 퍼져 상황이 심각했다. 처음 왼쪽 이마가 화끈거리고 잠을 못 정도로 아팠다. 물집은 왼쪽 이마를 뒤덮었다. 얼마 안 있어 왼쪽 눈을 시작으로 오른쪽 눈까지 부어올라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병원에선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왼쪽 눈 신경을 침범했다고 했다. 자칫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서둘러 안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7년 전 위암수술을 받은 유씨는 밥을 잘 못 먹어 기력이 떨어지는 등 몸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의사는 “대상포진은 암 환자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흔히 걸린다”고 설명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3명 가운데 1명은 ‘통증의 왕’으로 불리는 대상포진을 평생 한 번씩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에서도 대상포진 환자가 매년 늘고 있다.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2016년 대상포진 진료 환자는 약 70만명이었다. 2012년에 비해 4년 사이 20% 가까이 증가했다. 대상포진은 2∼10세 때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바리셀라 조스터) 감염이 원인이다. 수두에 걸렸던 사람은 이 바이러스가 몸 속 신경절(신경의 시작점)에 계속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을 재개해 신경을 따라 증상을 일으킨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띠 모양의 수포(물집)가 특징이다. 몸 어디에나 생길 수 있지만 가슴 옆구리 목 등 몸통의 한쪽에 주로 나타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안면 대상포진, 가장 위험 안면 대상포진은 5번째 뇌신경인 삼차신경에 바이러스가 침범해 생긴다. 얼굴 감각과 근육 운동을 관장하는 삼차신경은 3개의 가지를 갖고 있는데, 눈신경(이마 앞머리 안구) 위턱신경(윗입술 입천장 뺨) 아래턱신경(아랫입술 잇몸 혀)을 따라 통증과 물집이 나타난다. 경기도 수원 김찬병원 김찬(전 아주대병원 교수) 대표원장은 “안면 대상포진의 경우 두통, 각막·결막·시신경염, 안검하수(눈꺼풀 처짐), 시력저하, 귀 통증, 이명(귀울림), 청력 저하 등 여러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제대로 치료하지 않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면 영구 실명이나 안면마비는 물론 뇌염, 뇌수막염 같은 위험한 중추신경계 합병증도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얼굴 대상포진 환자는 1년 안에 뇌졸중이 발생할 위험이 정상인보다 4.3배 가량 높아지는 것으로도 보고됐다. 아주대병원 신경통증클리닉 최종범 교수는 “안면 대상포진이 혈관 염증으로 이어지고 뇌경색 등 합병증이 일부 환자에게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안면 대상포진에 걸린 후 치매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대만 연구진은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대상포진 환자(846명)와 정상인 대조군(2538명)을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안면 대상포진 환자군의 혈관성 치매 발병률이 1000명 당 10.15명으로 대조군(1000명 당 3.61명)보다 2.97배(다른 요인 보정해 계산) 높았다. 남성의 치매 발병률이 여성보다 높았다. 최 교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안구에 침범한 대상포진이 뇌혈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어야 근래엔 젊은 대상포진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2016년의 경우 18.3%가 20∼30대 환자였다. 김찬 원장은 “과거에는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최근 20∼40대 발병률도 느는 추세”라면서 “학업·취업 스트레스, 잦은 야근과 술자리 등 불규칙한 생활습관, 과도한 다이어트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젊은층이 느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사회 활동과 육아 스트레스로 대상포진에 걸린 젊은 여성들도 병원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피부과 조남준 교수는 “질병 자체나 합병증 못지않게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하다. 피부 물집, 흉터로 인한 외모 스트레스와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거나 극심한 통증으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특히 신경 통증은 물집이 사라진 후에도 수개월에서 수년간 계속돼 환자들을 괴롭힌다. 이로 인해 만성피로 수면장애 식욕부진 우울증을 겪으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되도록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암이나 면역질환자, 고령자,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람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규칙적 생활습관, 운동, 균형잡힌 식사, 정기적 휴식으로 평소에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조 교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된다”고 조언했다. 대상포진은 여름철에 조금 더 많이 발병하지만 일교차가 심해지는 환절기나 요즘처럼 춥고 건조한 겨울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면역력은 계절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나는 등 감기 몸살로 착각하기 쉽다. 이 때문에 감기약을 먹는 등 잘못된 처방으로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할 수 있다. 대부분 피부 물집보다 4∼5일 앞서 통증이 나타난다. 따라서 극심한 통증 후 띠 형태 피부 물집이 일어날 경우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제때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후유증과 합병증이 올 수 있다. 대상포진을 확진 받은 후에는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 치료와 신경통증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대상포진은 단순 피부병이 아니라 신경에 바이러스가 옮아 발병하므로 적극적인 신경 치료가 도움된다. 조 교수는 “가끔 피부 물집 없이 통증만 동반되는 경우 대상포진 진단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면서 “특히 안면 대상포진의 경우 두통이나 치통이, 가슴 쪽 대상포진의 경우 심한 흉통이 나타나는 심근경색과 착각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 진단하지 말고 서둘러 병원을 찾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50세 이상, 백신 접종 고려해야 현재 국내에는 국내외 제약사 2곳의 대상포진 백신 2개 제품(MSD의 조스타박스, SK케미칼의 스카이조스터)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아 시판되고 있다. 임상시험을 통해 접종 효과와 안전성은 확인됐다. 50세 이상에서 1회 주사로 대상포진 예방 51%, 통증 예방 67% 등의 효과가 입증됐다. 예방 효과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효과 지속 기간은 5∼11년(평균 8년) 정도다. 접종가는 1회 주사에 조스타박스가 15만∼20만원, 스카이조스터가 15만∼16만원으로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조 교수는 “다만 지금의 대상포진 백신은 생(生)백신이라 암환자 등에게는 쓸 수 없다. 1∼2년 내에 효과가 더 좋고 암 환자들도 사용 가능한 사(死)백신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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