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재배

유례없는 파삼값 폭락…벼랑 끝 내몰린 인삼농가

고재순 2022. 11. 19. 22:05

 
파삼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인삼농가 박배근씨(왼쪽)와 김창우씨가 수확을 앞둔 인삼밭에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평년 대비 도매가격 40% 수준
전국 축제 취소 따른 소비위축 값싼 열매 수요증가 등이 원인
정부·자조금관리위 대응 시급


“소비부진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인삼농민들 모두 아사 직전입니다.”

올해 전국 인삼농가는 유례없는 파삼(가공용 원료삼)값 폭락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상태다. 일각에서 ‘한국 인삼산업 위기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다.

대표적 주산지인 경북 영주도 마찬가지다. 농가들 사이에선 인삼값 지지기반 역할을 하는 파삼값의 급락이 전체 인삼시장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봄 수확 후 도산한 농가가 벌써 여럿”이라거나 “올해 인삼 식재면적이 20%나 줄었다더라” 하는 전언이 이를 방증한다. 농가들은 한목소리로 인삼값 하락에 대한 우려와 함께 더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호소했다.

풍기읍 서부리에서 6만6116㎡(2만평) 규모로 인삼농사를 짓는 박배근씨(60)는 “6년근 농사를 지으면 1칸(3.3㎡)에 생산비가 6만원가량 드는데, 올해는 파삼값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져 1칸당 조수익이 4만5000원도 안될 것 같다”며 “6년근은 1년 더 묵히면 땅속에서 썩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캐낼 수밖에 없으니 손실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농가들은 올해 파삼값 하락의 원인으로 전국 인삼축제 취소에 따른 소비위축, 지난해 수확을 미룬 인삼의 홍수출하, 값싼 인삼열매(진생베리) 수요 증가 등을 꼽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소비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2년 치 물량이 동시에 시장으로 쏟아질 기미를 보일 뿐 아니라, 가공식품 원료로 값싼 대체재가 각광을 받는 탓에 삼중고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풍기인삼발전연구회장이기도 한 박씨를 비롯해 영주시의회와 풍기인삼농협(조합장 권헌준) 관계자, 인삼농가 등 20여명이 6월 한자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절박한 농가들은 당시 갖가지 대책을 제시했지만 당장 실행 가능한 해결방안은 도출하지 못했다.

20년 넘게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 김창우씨(48·풍기읍 산법리)는 당시 회의자료를 펼쳐 보이며 “현재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파삼 가격이 평년의 40∼50% 수준이라 5∼6년간 공들여 인삼을 재배한 농가들은 모두 적자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9월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가면 대부분 농가들이 농협으로부터 외상약정으로 수혈받은 농자재 대금을 상환해야 한다. 정부에서 대금 상환을 3년 정도는 유예해줘야 농가의 숨통이 트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인삼값 안정화를 위해 인삼을 물가조절 품목에 넣어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지금 같은 상황이 재발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에서 시장논리만을 내세워 인삼값 하락과 이에 따른 농가 도산을 방치하면 국내 인삼산업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게 농가의 우려다. 그러면서 농가들은 정부뿐 아니라 인삼자조금관리위원회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자조금관리위가 구심점이 돼 농가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씨는 “정부 차원의 인삼값 안정화 노력은 물론이고 자조금관리위를 중심으로 인삼농가들이 뜻을 모아 시장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자조금관리위에서 연간 5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인삼열매 수요를 인삼으로 돌릴 수 있도록 가공식품에 대한 인삼열매 사용 금지를 결의해 인삼값 지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지역의 300여 인삼농가들은 불가피하다면 7월 중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정상적인 집회 개최는 어렵겠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인삼농가의 절박한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김씨는 “우선 전국 인삼 생산자단체·농가와 연계해 정부에 어려운 실정을 호소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가를 구제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러나 저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니 시국이 엄중하더라도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영주=김동욱 기자 jk815@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