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로 접어드니 내리쬐는 햇살 한 줌, 얼굴에 와 닿는 바람 한 점이 한결 포근하고 따사롭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사라는 생각도 드는데, 계절이 때에 따라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오니 참 반갑고 고맙다.
봄과 함께 나의 봄 친구, 냉이라는 녀석이 어김없이 1년 만에 내 곁으로 찾아왔다. 냉이는 원래 늦가을부터 작은 싹을 볼 수 있는데,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얼어붙은 땅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이른 봄냉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자랑한다.
냉이는 뿌리째 캐서 먹기에, 겨울을 지낸 봄의 냉이는 인삼만큼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냉이는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A 성분을 풍부하게 포함해 봄에 활력을 더하고, 춘곤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냉이로 국을 끓여 먹으면 몸에 원기가 돈다. 이 원기가 간에 들어가 눈을 맑게 해준다’고 기록돼 있기도 하다.
냉이는 4월까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고, 향을 잃는 5월에는 하얀색 작은 꽃을 피우는데 관상용으로 보기 좋을 정도로 꽃도 참 곱다. 어릴 적 나는 이맘때가 되면 작은 바구니를 하나 들고 냉이와 쑥을 캐기 위해 누나를 따라 논밭을 누볐다. 누나는 논과 밭, 언덕에서 냉이와 쑥을 척척 캐는데 난 어려서 냉이 대신 비슷하게 생긴 다른 풀을 냉이라고 생각해서 캔 적도 많았다. 진짜를 걸러내고 나면 바구니가 가벼워져 허무해졌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캐 온 냉이는 저녁 밥상에 나물로 올라오기도 하고, 어머니가 만드는 음식 곳곳에 쓰였다.
특히 냉이 된장국의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는 쌀 씻은 물에 전통 된장으로 맛을 내고 바지락과 냉이를 넣어 시원하게 냉이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담백하게 우러난 바지락 국물과 쌉쌀한 냉이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 된장 국물 맛이 일품이었는데, 냉이 된장국이 올라오는 날에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했다. 우리 집 밥상에 봄을 알리는 별미 메뉴였던 셈이다.
그때 맛봤던 냉이와 바지락의 궁합을 잊지 못한다. 바지락은 봄나물과 잘 어울려 봄 메뉴에 곧잘 사용되는데, 바지락 역시 3∼4월에 가장 맛이 좋은 제철 식재료다.
바지락은 서해안이나 남해안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칼슘, 철분, 비타민, 타우린 등이 풍부해 숙취 해소와 원기 회복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바지락은 물에 넣고 끓이면 유난히 뽀얗고 맑은 국물이 우러나는데, 특유의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으로 기본 국물로 활용도가 높다.
꽤 궁합이 근사한 향긋한 냉이와 3월에 맛 좋은 바지락을 함께 사용해 ‘바지락 냉이밥’을 준비해 봤다. 먼저 싱싱한 냉이는 손질해 살짝 데치고, 냉이 데친 물에 불린 쌀과 바지락을 넣어 밥을 짓고 따로 양념장을 준비하는 순서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메뉴에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먼저 냉이는 밥을 지을 때 처음부터 함께 넣는 것이 아니라, 냉이를 살짝 데친 후 따로 참기름, 소금에 무쳐서 밥이 뜸이 들 때 따로 올린다. 냉이 데친 물을 밥물로 사용하기에 냉이 특유의 향과 맛은 살리면서, 오래 끓이면 없어질 냉이의 선명한 색상과 식감은 살릴 수 있다. 또한 밥을 할 때 밥물에 천연 색소인 치자 우린 물을 첨가함으로써 밥 전체의 색감이 노란색이 되도록 해, 더욱 식욕을 돋울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은 간장 양념장에 달래를 넣어 밥 전체에 봄나물의 향긋한 내음을 더했다.
밥은 뜸이 들면, 냉이와 바지락이 고루 섞이도록 먹기 좋은 그릇에 담는다. 밥에 달래간장을 쓱쓱 비비면 퍼지는 봄나물의 향에 침이 고인다. ‘바지락 냉이밥’을 한 입 맛보면, 쌉싸름한 냉이의 맛과 향긋한 달래간장의 맛, 바지락 육수의 감칠맛이 기대 이상의 조화를 이루며 입속에 향긋한 봄의 맛을 전한다.
시작되는 봄에 색다른 계절 음식을 원한다면, 들과 바다의 봄기운을 가득 담은 ‘바지락 냉이밥’을 권한다. 한 그릇 음식이니 한 끼를 준비하는 수고로움은 비교적 덜 하면서, 이 계절에 필요한 맛과 영양소는 꽉 채웠다. 정녕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맛이다.
한식당 다담 총괄·사찰음식 명인
어떻게 만드나
재료
불린 쌀 1컵, 바지락 4∼5개 ,냉이 한 줌(150g), 냉이물 2/3컵, 치자물 2/3큰술, 참기름 1/3큰술, 소금 한 꼬집, 양념장(조선간장 1/2큰술, 진간장 2큰술, 청·홍고추 약간, 다진 마늘 1/3큰술, 참기름 약간, 달래 1/2큰술, 깨·고춧가루 한 꼬집)
만드는 법
1 냉이의 시든 잎은 깨끗하게 제거하고 뿌리는 칼등으로 살살 다듬는다.
2 다듬어 놓은 냉이는 깨끗한 물에 흔들어 씻는다.
3 냄비에 물을 올린 후 2의 냉이를 끓는 물에 소금 1/2작은술을 넣고 30초간 데친다.
4 냉이는 건져 찬물에 헹궈서 물기를 짜고, 데친 냉이 물은 버리지 말고 2/3컵을 따로 담아둔다. 색내기용으로 치자 우린 물을 조금 섞는다.
5 솥에 불린 쌀 1컵을 붓고 4의 냉이 치자물 2/3컵을 넣어서 바지락을 올린 후 가스에 올려 밥을 짓는다.
6 센 불에서 끓이다 끓어오르면 중간불로 2∼3분, 약한 불에서 13분 정도 끓인다.
7 데친 냉이는 참기름, 소금, 다진 마늘을 이용해 따로 무친다.
8 완성된 밥 위에 냉이 나물을 놓고 뜸을 들인다.
9 양념장은 분량의 재료를 혼합해 만든다.
10 알맞은 그릇에 바지락 냉이밥과 냉이 양념장을 따로 담아 낸다.
조리Tip
1 바지락은 소금을 물에 넣고 박박 씻은 후 햇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검정 비닐로 덮은 후 해감을 한다.
2 불리지 않은 쌀로 밥을 지을 경우는 쌀 1컵에 물 1과 1/3컵을 넣고 밥을 짓는다.
3 냉이는 생으로 먹으면 질겨서 식감이 좋지 않고, 데친 후 먹으면 소화 흡수율도 좋아져 주로 데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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