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마을, 그 첫단추를 열다

고재순 2012. 2. 23. 10:02

제 집을 짓고 난 뒤로 지난 1월에 이 마을로 전입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작년 8월부터 진입이 시작되고,  빈집이 없는 터라

다른 마을 빈집을 구해 살고있는 가족도 있고, 아직 이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 10가족이지요.

집을 지으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식인사를 할 겸 먼저

고치리에 정착한 앵두와 머위님 가족도 왔습니다. 

 

이 날 모임에서는 신년 전입계획으로 집짓기 관련 문제 및 농사 계획 그리고

각 가정에서 필요한 화폐규모 및 마련에 대한 생각들이 주요 사항이었지요.

그리고 다음 모임방식에 대한 얘기를 늦은 밤시간까지 나누었습니다.

 

 

그 날 가능한 정월대보름날을 기해 마을분들과 인사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으며, 2월 6일, 정월대보름날 우리들은 마을분들과 대면을 했습니다.

10가족이 모두 모였지요.  내가 사는 곳 아랫동네에 어르신들 대부분 살고 있기에

오르내리면서 인사를 나누고 마을회의도 두차례 참석한 터라 친숙하지요.

항상 밝게 인사하는 것, 어느새 제 입에 붙은 전라도 사투리, 무엇보다도 농사와

촌생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노인들과 대화거리가 많은 점이 더욱 친숙케 하더군요.  

 

 

각 집의 물질적 사정에 따라 차등하여 돈을 냈고, 그 돈에서 절반은 음식준비에

소비했고, 절반은 마을 기부금으로 이장님에게 드렸습니다. 물론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은 마을잔치에 기뻐했지만 기부금에 더욱 감탄하셨습니다.

돈....이래저래 좋긴 했습니다.

 

.

우리들이 준비하는 마을잔치의 의미는 신고식의 의미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유지하고 있어줘서 고맙고, 조용한 마을에 여기저기 집짓느라 마을이

하루종일 시끄럽게 해서 무진장 미안해서, 또한 노인들을 섬기고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집단적 표현이지요.

 

 

우리 마을에 남성 노인(65세 이상)이 총 6명이지요. 두 분이 부부로 사시고

세 분이 홀로 사십니다. 역시 나이가 들수록 남성의 수가 현격히 줄어듭니다.

아래 5명의 할아버지 외에 이장님이 계시지요.  

 

 

마을회관 단골 할머니들이빈다. 빨간 옷을 입고 계신 두 할머니가 인상적인데

가운데 할머니를 제가 좋아하고 (외할머니를 닮아서이고, 이 마을을 보러 두번째

왔을 때 뵌 할머니이기에), 오른쪽 쪽 진 할머니는 단아한 모습과 말투가 인상적이지요.

이 할머니는 야생사과가 좋아합니다. 세 분이 82세 이상이고, 두 분이 칠순말이지요.

 

 

이곳에서도 주방장을 맡은 유여사님. 마을잔치, 어르신들의 비위를 어떻게 맞출지

-음식 맛이 좋다는 전라도인데-그리고 50명분의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이 여의치

않았는지 메뉴선정에 상당히 고심을 했지요. 수육, 홍어,찰밥, 삼색나물을 제치고

조여사님의 롯데표 쌀국수가 마을분들의 인기메뉴로 등극했습니다.

 

 

 

오후 5시 시작인데, 마을 어르신들이 배고프다는 '투정'으로 4시 반부터 식사가

시작되었고, 방에는 마을노인분들과 거실에는 저희가족들과 마을에서 젊은분들

-50대 여성분들이 옹기종기 먹기시작했습니다.

 

 

미옥이 엄마와 대구댁. 시골에서는 출신지가 붙여져서 구터댁, 남원댁, 봉진댁

등으로 불립니다. 류여사님의 최초의 호칭이 광명댁이었는데 아마도 이제야

본명을 찾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광명댁, 부천댁,수원댁,시흥댁,강동댁, 포천댁 ㅋㅋ

 

 

마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친구들입니다. 초등학교 이하 5명이지요.

언니동생 서로 만나면 정신없습니다. 창고로 쓰이는 마을회관 방에서

추운데도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마을 이장님. 우리 전입자들이 때문에 곡성군에서 대우받고 계시지요.

저희들을 여기저기 '팔아서' 마을에 지원해달라고..ㅋㅋ. 그런데 지난 2월 마을신년회의

때 제가 사는 산골쪽으로 길을 완전히 포장하고 넓히는 계획을 얘기하다 제가 처음으로

단호하게 ' 현재의 자연생태를 그대로'라고 선언했지요. 이장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겠지요. 

 

시골에서도 개발=잘 사는 마을로 등식화 되었지요. 두 차례에 걸쳐 조목조목

설명했고, 마을 어르신들은 납득을 했지만, 그게 하루이틀만에 되지 않겠지요.

군에서 가난한 마을 중에 하나인데 저희들 때문에 부자마을이 된다고 의기양양

음~부자마을이란~누누히 얘기합니다. 여기서도 입이 아픕니다. 

마을분들이 한켠에서 저희 가족 단위로 인사를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군이나 이장편에서는 귀농자들이 많아지면 인구비례만큼 지자체 예산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당연히 좋아합니다. 농기센터 소장님이 줄줄이 데리고 왔는데, 이 분은 제 집에도 불현듯

찾아와 저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제가 생각하는 마을의 컨셉에 대해서 동의했지요.

보름잔치에 와서도 通했습니다. 

"이 마을은 자연환경답게 생태마을로 가야합니다.무농약 친환경적으로 농사짓고,

가능하면 토종종자로 전통적 방식으로..., 또 마을 입구에서 차량을 통행을

금지시키고 걸어서 초동까지 올라가는 그런 마을로 만들어야...." 

우리들이 전입해온 이유가 제일 우선은 자연환경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장님 생각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대부분 소농에다 노인분들 농사짓고 있으며, 마을에 절반 정도만 자식에 주고

남은 것을 팔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무농약으로 짓는 경우에는 지자체 수매에 맡기지

않고 저희들이 직거래로 팔아드린다고 했습니다. 이곳에는 우렁이 농법을

주로 하는 터라, 올해는 저도 우렁이 농법으로 따라할 계획입니다. 웬간하면 마을의

관례를 따라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응용하거나 제 방식을 세울 생각입니다.

마을에 갔으니 그 마을을 배워야겠지요.

 

 

막둥이. 이번 잔치에서 마을분들께 절도 하면서 절돈도 받고.., 준용이 아빠는

셋을 더 나아서 '앵벌이'를 시키는 것도 좋겠다고 농을 던집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들이 절을 하면 어른들이 돈을 주니까, 절을 잘 하더군요. give and take

를 배우는 게지요. 어른들의 절과 돈의 환치를 생각해볼 일입니다. 만약

절을 했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기대에 어긋나 섭섭해지겠지요.

절=돈...이런 유사한 등가관계가 수없이 많겠지요. 생각을 깊이해야겠습니다. 

 

 

비가 와서 밖에서 놀지 못하는 아이들.현봉이가 준용이와 놀고 있습니다.

19살의 현봉이는 조용하게 아빠를 잘 따라다닙니다.

1년 농사를 같이 할 계획인데, 마을에서도 장정 현봉이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영농후계자가 된 셈이지요. 

 

 

현봉이 형 준봉이. 이번에 농수산대학에 들어갔지요.

강반장님은 귀농해서 뜻하는대로 착착 진행된 케이스입니다. 준봉이는 이날

막걸리 두 잔에 취해서, 할머니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데, 준봉이의 노래솜씨는

한마디로 죽여줍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흘러간 옛노래'를 그렇게 맛깔스럽게

부르더군요. 그 옆에 야생사과도 한곡조 뽑았는데, 앞으로 '흘러간 옛노래'를 잘

불러야 마을에서는 대우를 받습니다.

할머니들은 '남행열차'란 노래도 모릅니다. 그리니까 트로트를 부르기보다

두만강, 뱃노래 뭐 이런 것을 불러야 흥에 겨워하십니다. 

 

 

준봉이의 리사이틀이 이어지면서 한켠에 우리 팀들은 웃느라 정신없습니다.

리사이틀이 이어지는데 ...생음악으로 하니 가사가 잘 생각이 안나서

흥이 약간씩 깨지기도 했지요. 노래방기계에 의존해서 부르던 우리의 관성도

이제 시골스럽게 생음악으로 잘 불러야겠지요.

마을회관에 노래방기계가 없는 것이 다행입니다. 한글을 모르시는 할머니들도

많기 때문에 노래방기계는 별 의미도 없는데다가 사실 우리들의 빼앗긴 기억과

문화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겠지요.

 

 

준봉과 준용. 할머니들의 관심을 한가득 끌어내고.

할아버지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할머니들만 남자, 술 못마신다는 분들이 갑자기

술상을 봐오라고 하면서 맥주, 소주 한잔을 마시기 시작했지요.

전 정말 술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그 덕에 전 막걸리를 같이 하면서 무농약

하는 방법, 토종종자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시간이 되었지요.

 

 

 

남녀 유별. 역시 전라남도의 풍습이지요. 이곳에서는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면

남자들이 당황하더군요. 두 번 경험을 하고 나서, 물어보니 여자가 손을 내밀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악수도 남자가 하는 것이지 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어르신들이기에 보수적이겠지만, 어째튼 이곳 예법에 따라해서 나쁠 것 없으니

손 내미는 버릇을 고치고, 술 권하는 것도 고쳐야겠습니다.

 

마을분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마을사람들. 

새 술은 덜 익은 터라 舊(구) 술에 담겨지면 더 잘 익고 독이 빠져나갈 터.

우리는 그들로부터 잊어버린 기억과 지혜를 되살리는 일에만 충실하면

오래된 미래의 마을이 될 터.

 

 

출처 : 연두자립마을
글쓴이 : 단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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