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술담그기 100선

세번 담가 저온숙성…도수 높지만 목넘김 좋아

고재순 2023. 1. 29. 14:29
[우리 술 답사기] (46) 강원 양양 ‘양양술곳간’
귀촌해 제2 인생 찾다 만난 ‘술’
웬만한 술빚기 서적 전부 탐독
2020년 추석무렵 첫작품 내놔
멥쌀·찹쌀 1대2 비율로 사용
최적 찹쌀 찾고자 손수 재배도
깔끔하고 경쾌한 맛 ‘모든날에’
‘양지백주’ 고소한 풍미가 일품 




 
강원 양양 ‘양양술곳간’에서 빚은 약주 ‘모든날에(왼쪽)’와 막걸리 ‘양지백주’.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김정녀 ‘양양술곳간’ 대표(57)와 안상호 이사(57)는 부부로 동고동락하며 7년째 강원 양양에서 술을 빚고 있다. 2020년 추석 무렵 ‘양양술곳간’은 대중에게 첫 술을 내놨다. ‘한가지를 해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매일 도전하며 사는 이들을 서울 종로구 전통주갤러리에서 만났다.

김정녀 ‘양양술곳간’ 대표(왼쪽)와 안상호 이사 부부가 손수 빚은 술을 보여주고 있다.

“‘둘이 하면 망해도 괜찮다. 같이 이겨내면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어요. 제가 술을 빚으면 남편이 평가해주죠.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에요.”

김 대표와 안 이사는 도시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였다. 은퇴할 나이가 다가오자 양양에 귀촌해 제2의 인생을 모색하다 만난 게 술 빚기다. 양양은 안 이사 고향이기도 하다. 수업을 들으며 술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 대표는 본격적으로 술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후발주자라는 생각에 걱정도 많았다.

“은퇴할 나이에 술 빚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책 읽고 공부하는 건 남들보다 잘할 수 있겠더라고요. 한국에서 나온 웬만한 술 빚기 서적은 전부 구해서 공부했죠. 요즘도 ‘글로 배운 술’을 만든다고 농담하곤 해요.”

그렇게 탄생한 술이 약주인 <모든날에(15도)>와 막걸리인 <양지백주(15도)>다. <모든날에>는 ‘우리가 만든 술로 모든 날에 많은 사람과 행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양지백주>는 ‘양양술곳간’의 옛 이름인 ‘양지’와 고서에서 막걸리를 ‘백주(白酒)’로 부르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술은 멥쌀과 찹쌀 비율을 1대2로 사용한다. 양양 강현농협에서 품질 좋은 쌀을 공급받는 게 비결이다. 찹쌀 비율이 높은데도 두가지 술 모두 당도가 낮고 드라이한 느낌이 강하다. 세번 담근 삼양주라 도수도 높은 편이다.

<모든날에>는 한달∼한달반 정도 발효, 120일간 항아리에서 저온숙성해낸 약주다. ‘저온침전여과’ 방식으로 여과기를 쓰지 않고 술을 가라앉힌 다음 윗부분 술을 떠내 탁도가 약간 있다. 기분 좋은 경쾌한 산미가 있으며, 입안에 머금다 넘기면 남는 것 없이 깔끔하다.

<양지백주>는 30일간 저온숙성한 막걸리로, 막걸리치곤 도수가 높다. 탄산감이 없으며 미숫가루 같은 질감이 난다. 산미가 지배적이지만 그렇다고 단맛이 없는 건 아니다. 술을 식도로 넘기기 전 고소한 쌀향과 함께 가벼운 참외향이 여운처럼 남는다. 도수가 부담스러우면 얼음을 넣어 ‘온더록스’로 마셔도 좋으나 김 대표는 작은 술잔에 막걸리 그대로 마시는 걸 추천한다.

“주로 지역마켓을 통해 ‘양양술곳간’의 술을 선보이고 있어요. 마셔본 분들이 ‘맛있다’ ‘최고다’ 칭찬을 해주면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하죠.”

‘양양술곳간’은 최근 찹쌀 재배에도 도전하고 있다. 찹쌀도 품종이 다양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품종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술에 어울리는 최적의 찹쌀을 찾고자 올해부터 2600㎡(800평) 규모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가누룩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현재는 술을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누룩을 사서 쓰고 있지만, 앞으론 ‘양양술곳간’만의 누룩을 만드는 게 목표다.

내년엔 증류주 생산도 계획 중이다. 또 양양 특산물을 활용한 색다른 술도 차근차근 빚어볼 예정이다. ‘양양술곳간’에만 와야 마실 수 있는 특별한 ‘계절주’도 구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금이 은퇴 전보다 바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식하면 무섭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으니 더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어요. 일단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술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그리고 양양에 놀러 온 분들을 통해 ‘이 집 술 참 맛있다!’라고 감탄이 나오는 술로 소문나길 바랍니다.”

<모든날에>는 500㎖ 기준 2만8000원, <양지백주>는 2만원이다.

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사진=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