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말 1717

겨울 사랑의 편지

겨울 사랑의 편지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좋은글 좋은말 2023.02.03

외상장부

옛날 어느 고을에 지혜롭고 의술이 뛰어난 명의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그는 여러 자녀를 두었고 생활은 그리 넉넉지는 않았지만 자녀들 공부도 할만큼 다 시켰고 의술은 남보다 뛰어났지만 그렇게 부자는 아니였다. 돈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외상으로 치료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안에 보물 제1호가 외상 장부였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물려받을 재산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항상 불만이였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세월 앞에 노안으로 병이 들어 드러눕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내 마지막 유언은 꼭 들어주어야한다고 신신 당부하였다. 자식들이 "아버지 말씀하세요. 무엇이든지 다 들어 들이지요." 아버지는 숨을 몰아쉬면서. "내 외상..

좋은글 좋은말 2023.02.03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좋은글 좋은말 2023.02.03

성냥

성냥 임영조 ​ ​ ​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출옥하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다 ​ 오랜 연금으로 흰 뼈만 앙상한 체구에 표정까지 굳어버린 돌대가리들 언제나 남의 손끝에 잡혀 머리부터 돌진하는 하수인(下手人)이다 ​ 어둠 속에 갇히면 누구나 오히려 대범해지듯 저마다 뜨거운 적의(敵意)를 품고 있어 언제든 부딪치면 당장 분신(焚身)을 각오한 요시찰 인물들 ​ (주목받고 싶은 자(者)의 가장 절실한 믿음은 최후의 만용일까? 의외의 죽음일까?) ​ 그들은 지금 숨을 죽인 채 어두운 관(棺)속에 누워 있지만 한순간 화려하게 데뷔할 절호의 찬스를 노리고 있다 빛나는 출세(出世)를 꿈꾸고 있다. ​ ​시집 세계사. 1992

좋은글 좋은말 2023.01.29

매화 앞에서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에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좋은글 좋은말 2023.01.29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이외수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좋은글 좋은말 2023.01.28

가족

가족 ​용혜원 하늘 아래 행복한 곳은 나의 사랑 나의 아이들이 있는 곳입니다 한 가슴에 안고 온 천지를 돌며 춤추어도 좋을 나의 아이들 이토록 살아보아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평생을 이루어야 할 꿈이라도 깨어 사랑을 주겠습니다 어설픈 아비의 모습이 싫어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지만 애정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 것을 가족을 위하여 목숨을 뿌리더라도 고통을 웃음으로 답하며 꿋꿋이 서 있는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좋은글 좋은말 2023.01.28

은은함에 대하여

은은함에 대하여 / 도종환 은은하다는 말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 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에서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좋은글 좋은말 2023.01.28

기쁨꽃

기쁨꽃 이해인 한번씩 욕심을 버리고 미움을 버리고 노여움을 버릴 때마다 그래그래, 고개 끄덕이며 순한 눈길로 내 마음에 피어나는 기쁨꽃, 맑음꽃 한번씩 좋은 생각 하고 좋은 말 하고 좋은 일 할 때마다 그래그래, 환히 웃으며 고마움의 꽃술 달고 내 마음 안에 피어나는 기쁨꽃, 밝음꽃 한결같은 정성으로 기쁨꽃 피워내며 기쁘게 살아야지 사랑으로 가꾸어 이웃에게 나누어 줄 열매도 맺어야지

좋은글 좋은말 2023.01.24

천원짜리 여섯장

♡천 원 짜리 여섯 장...♡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한 아저씨가 안경점에 들어섰습니다.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그가 안경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장모님께 안경을 맞춰 드려야 하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한사코 괜찮다고 사양하신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살림이라 아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아저씨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그는 5만원을 미리 내면서 아내와 장모님이 부담을 가지지 않게 그들 앞에서는 안경이 저렴한 것처럼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장모님 앞에서는 정가에서 5만원을 뺀 가격을 얘기해 라고 부탁한 것이지요. 며칠 후 올망졸망한 손자들과 함께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가 안경점에 오셨습니다. 할머니가 고른 안경은 정가가 10만 원 정도 였습니다. 아저씨와 미리 짠 대로라면 5만원 이라고 말..

좋은글 좋은말 20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