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여자 없네 산길에서 오리나무를 만나니 무너졌던 시절이 다시 무너지네 봄날은 화창하게 치장하고 오는데 섦기만 하네 숲을 휘청이는 봄바람도 그녀의 웃음소리에 비껴가던 날이었네 오리나무 꽃을 따더니 귀에 걸어 보이며 귀걸이 예쁘지, 하며 샐쭉 웃던 여자 뒤뚱뒤뚱 걸어 보이며 이래도 예쁘지, 하며 몸을 꼬던 여자 물가를 건너다 살며시 꽃을 띄워 보내며 제 엉덩이처럼 동그랗고 상큼하게 물을 튕기던 여자 내 자전거 뒤에 타기를 좋아했던 여자 돌부리에 걸려 봉긋한 가슴이 내 등짝을 물컹 덮칠 때 그때부터 그녀는 내 여자였네 내 냄새를 오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다던 여자 그 여자 이제 없네 그런 여자 없네 봄날이 섦기만 하네 - 라경주 -